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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신데렐라와 그 너머, 영화 <아노라> 리뷰

by storyofyourlife1103 2025. 4. 13.

출처:IMDB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편집상 타이틀에 걸맞게 강렬하고 신선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브루클린의 젊은 스트리퍼 아노라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만나 즉흥적인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얼핏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계급, 돈, 그리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예측 불허의 만남과 급작스러운 결혼

  영화는 처음부터 여러 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바를 보여주며 강렬한 이미지의 오프닝을 선보인다. 이 바에는 주인공 마이키 매디슨이 연기하는 아노라가 등장한다. 아노라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한 매력을 발산하며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철없는 부잣집 아들 이반 역의 마크 에이델스타인은 능글맞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젊음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낭만적이고 코믹하게 그려지며, 이들이 라스베가스에서 한 즉흥적인 결혼은 앞으로 펼쳐질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예고한다. 영화 초반부의 경쾌한 분위기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 될 수 있다. 

 

 

 

계급 갈등과 돈의 위력 앞에 놓인 사랑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행복한 순간을 오래도록 보여주지 않는다. 이반의 부모가 아들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극의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돈과 권력을 쥔 이반의 부모는 아노라를 그저 돈을 노리고 접근한 하찮은 존재로 여기며, 두 사람의 결혼을 무효화하기 위해 냉혹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이때부터 영화는 노골적인 계급 갈등과 돈의 무서운 힘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노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 놓이면서,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조명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반 부모의 냉정함과 권위적인 태도는 관객에게 깊은 분노와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영화의 중반 이후는 아노라가 겪는 험난한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이반의 부모와 그들이 고용한 해결사들의 끊임없는 압박과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아노라는 단순히 순진하고 연약한 여성이 아닌, 강인한 의지와 굳건한 신념을 지닌 인물로 성장해 나간다. 마이키 매디슨의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연기는 이러한 아노라의 내면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관객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특히, 거대한 권력 앞에서 홀로 맞서는 아노라의 모습은 깊은 감동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아노라>를 통해 본 계급과 노동

 영화는 아노라와 이반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극명한 계급의 대비를 보여준다. 아노라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스트리퍼라는 노동을 수행하는 하층 계급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정, 그리고 사회적 편견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이반은 막대한 부를 가진 러시아 재벌가의 아들로, 노동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아마 노동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반은 그저 어학연수의 이유로 부모의 돈을 펑펑 써가면서 엄청나게 화려한 팬트하우스에 살고있다. 또한, 이고르, 가닉, 토로스를 얘기해보자면 표면적으로는 아노라와 갈등을 맺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이상할 뿐이지만 그저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아노라의 노동은 단순히 육체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손님들의 외로움과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감정 노동을 포함한다. 그녀는 춤과 대화를 통해 일시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며, 때로는 돈을 매개로 한 피상적인 관계를 맺기도 한다. 이반과의 만남 역시 이러한 상품화된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다. 그의 돈은 아노라에게 일시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계급 차이와 경제적 불균형이라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있음을 드러낸다. 아노라가 이반과 관계를 맺고 결혼까지 감행하는 과정은 그녀가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이반의 부모라는 강력한 자본 권력에 의해 좌절되고, 그녀는 다시 불안정한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계급 구조의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씁쓸한 현실과 희미한 희망의 공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노라는 결혼이 무효화 된 후 이고르의 차를 타고 집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이고르는 토로스에게서 몰래 훔처온 아노라의 결혼반지를 돌려주고 아노라는 그에게 자신의 몸을 준다. 이 장면에서 아노라의 심리 상태와 행동의 이유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아노라는 스트리퍼로 생활하면서 남이 무언가를 주면 자신도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삶을 살아왔다. 아마 그에 대응 하는 것 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을 영화 내내 배려해준 이고르의 행동을 깨달은 것도 가능성 있다. 아노라는 끝내 이고르의 품 안에서 울고 영화는 검은 화면과 자동차 와이퍼 소리만 들려준 채 끝나게 된다. 아노라의 미래에 대해 열린 결말로 끝냈다.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들게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인상적인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