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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연의 공허함,<마스터>

by storyofyourlife1103 2025. 7. 6.

출처: IMDB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12년 작 <마스터>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신념,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영화다. 사이언톨로지를 연상시키는 종교 단체 더 커즈를 배경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방황과 그를 도와주는 더 커즈의 수장의 관계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논쟁적이고 심오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필모그래피의 정점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전쟁의 상흔과 인간의 공허함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프레디의 모습을 통해 전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흔과 그로 인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레디는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욕구에 충실하며, 사회의 규범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에서 전쟁의 트라우마와 함께 삶의 목적을 잃은 인간의 고독과 방황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러한 프레디 앞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랭커스터이다. 더 커즈의 리더인 그는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혼돈에 빠진 사람들에게 정신적 구원을 약속하며 진리를 설파한다. 마치 현대판 메시아처럼 보이는 랭커스터는 사람들의 불안정한 마음을 파고들어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그의 심오한 가르침 속에는 교활함과 자기애, 그리고 자신 또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약함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이 두 극단적인 인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그로 인한 공허함을 드러낸다. 프레디의 육체적인 욕망과 랭커스터의 지적인 욕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하지만, 결국 그 공허함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프레디와 랭카스터의 관계

 프레디와 랭카스터의 관계는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 '마스터'와 제자, 혹은 부자(父子) 관계의 대리 형태를 띠며 복잡한 의존과 저항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랭커스터가 프레디에게 절대적인 마스터의 위치에서 지적인 가르침을 내리고 통제하려 한다. 프레디는 혼돈스러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랭커스터에게 의존하고 그의 프로세싱에 참여한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의 불안정한 영혼 속에서 자신의 교리가 통하는지 시험하고 증명할 대상을 발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관계는 미묘하게 뒤바뀌기 시작한다. 프레디는 랭카스터의 가르침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때로는 강렬하게 저항하고 반발한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폭력성과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은 랭카스터의 이성적이고 질서 정연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랭커스터는 프레디를 통해 자신의 통제력이 시험받고 있음을 느끼며, 프레디의 원초적인 에너지는 오히려 랭커스터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감을 자극한다.

 특히 두 사람이 감옥에 갇혔을 때, 랭카스터가 분노에 휩싸여 프레디에게 소리치는 장면은 랭커스터의 마스터로서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전까지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하던 랭카스터가 격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은 그가 더 이상 절대적인 통제력을 가진 마스터가 아님을 드러낸다. 오히려 프레디의 예측 불가능한 존재 자체가 랭커스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랭카스터의 이론에 대한 프레디의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질문들은 더 커즈의 허술한 논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랭커스터는 이러한 프레디의 도전에 당황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가 프레디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랭커스터는 프레디를 붙잡기 위해 마지막으로 설득을 시도하지만, 프레디는 더 이상 그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다. 이는 프레디가 랭카스터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고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과정을 보여준다.

 

 

 

랭커스터가 프레디에게 의존하는 양상

 겉으로는 랭커스터가 프레디를 가르치고, 이끌고, 치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랭커스터 역시 프레디에게 미묘하게, 때로는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여러 지점에서 보여준다. 이러한 의존성은 랭카스터의 나약한 본성과 더 커즈라는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랭카스터는 '더 커즈'의 교리가 보편적인 진리임을 입증하고 싶어 한다. 프레디의 극심한 트라우마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랭커스터에게 완벽한 실험 대상이 된다. 가장 통제 불능으로 보이는 프레디를 치유하고 개선할 수 있다면, 더 커즈의 위대함과 랭커스터 자신의 능력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프레디는 랭커스터의 이론적 완성을 위한 중요한 퍼즐 조각이었다. 

 랭카스터는 지적이고 통제된 삶을 살지만, 프레디에게서는 자신이 억압했을지 모를 원시적인 에너지, 본능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야만성을 발견한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광기 어린 활력에 매료되는 모습을 보인다. 프레디의 폭력적인 분출이나 성적인 충동은 랭커스터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프레디를 통해 일종의 대리 만족을 얻거나, 혹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통제되지 않은 욕망을 엿보는 듯한 모습도 비친다. 마치 문명을 상징하는 랭커스터가 야생을 상징하는 프레디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얻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더 커즈의 마스터로서 랭카스터는 늘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동시에 극도로 고독한 존재이다. 그 누구도 랭커스터의 깊은 내면을 이해하거나 그에게 솔직하게 반박할 수 없다. 심지어 그의 가족도 그러하다. 심이어 랭커스터의 아들은 아버지의 활동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프레디는 랭커스터에게 유일하게 거짓 없이 반응하고, 때로는 불손하게 대하며,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존재였다. 랭카스터는 프레디의 비정상적인 솔직함에 때로는 격분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에게서 진정한 교감 또는 친구와 같은 관계의 가능성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에게 "네가 나를 떠나면, 나와 너는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이 될 거야"라고 말하며, 프레디를 잃고 싶지 않은 듯한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랭커스터가 프레디를 단순한 추종자가 아닌,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여겼음을 시사한다.

 결국 랭카스터의 프레디에 대한 의존은 그의 지적인 자만심, 통제된 삶의 공허함, 그리고 마스터로서의 고독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역설적인 의존 관계를 통해, 아무리 강력하고 독립적으로 보이는 인물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결핍을 채우려 한다는 인간 본연의 나약하고도 보편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마스터>라는 제목은 랭커스터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군가를 마스터로 삼아 의지하려 하거나, 스스로 마스터가 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관계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신념의 본질과 인간의 취약성

 <마스터>는 종교, 신념,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영화는 더 커즈라는 단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왜 믿으며,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랭커스터 돗은 혼돈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 나타나지만, 그의 가르침은 결국 그의 개인적인 욕망과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아내 페기가 랭커스터에게 "당신은 거짓말을 잘하죠"라고 말하는 장면은 더 커즈의 신념이 얼마나 연약하고 인위적인 것일 수 있는지 암시하는 섬뜩한 일침이다.

 결국 프레디는 랭카스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은 여전히 방황하고 고독하다. 이는 구원이라는 것이 외부의 존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할 내면의 과정임을 암시한다.

 

 

 

 <마스터>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영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유지하며,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때로는 불친절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이 있는 주제 의식과 탁월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는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