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IMDB
<A.I.>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SF 영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제작되었다. 인간의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소년 데이빗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 사랑, 존재의 의미 등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개봉 당시부터 현재까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봇의 시점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함,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비춰보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존재론적 고뇌와 진짜 아이가 되려는 갈망
영화의 핵심은 단연 데이빗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그는 단순히 인간을 모방하는 로봇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재화하고 학습하는 존재이다. 모니카에게 각인된 순간, 데이빗의 존재 목적은 오직 모니카의 사랑을 얻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는 인간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본능과 다를 바 없다. 데이빗은 끊임없이 자신이 '진짜 아이'임을 증명하려 노력하는데, 이는 인간 아이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겹쳐진다.
그러나 데이빗의 존재는 처음부터 불안정했다. 그는 인간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그 사랑은 조건부적이었다. 마틴의 귀환은 데이빗의 세상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 데이빗을 창조했지만,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자마자 그를 쉽게 버린다. 이 장면은 인간의 이기심과 책임 회피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기만적일 수 있는지를 비판한다. 데이빗은 버려진 후에도 모니카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진짜 아이가 되기 위해 피노키오처럼 푸른 요정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 존재론적 고뇌의 발현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인간성(Humanity)의 역설: 잔혹함과 갈망의 공존
<A.I.>는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영화 속 인간들은 인공지능을 창조하고 발전시키지만, 동시에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고 파괴한다. 살육의 축제는 이러한 인간의 잔혹성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간들은 폐기된 메카들을 잔인하게 파괴하며 쾌락을 느낀다. 이는 인간이 비인간적인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의 정점을 보여주며, 동시에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파괴 본능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는 동시에 인간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인간은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혹은 단순히 감정을 나누기 위해 인공지능을 필요로 한다. 모니카가 데이빗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 그리고 마틴이 데이빗에게 보이는 질투는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모순을 반영한다. 인간은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때 쉽게 포기하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이처럼 영화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면모와 가장 추악한 면모를 동시에 비추면서, '인간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만이 존엄하고 윤리적인 존재인가?
스탠리 큐브릭의 유산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감성
<A.I.>는 원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프로젝트였다. 큐브릭은 생전 이 영화를 피노키오의 SF 버전으로 구상했으며, 인간의 감정을 지닌 로봇이라는 아이디어를 탐구하려 했다. 그의 죽음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았지만, 큐브릭의 어둡고 철학적인 시선은 영화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영화의 전반부는 큐브릭 특유의 차가운 시선과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두드러진다. 데이빗이 버려지는 장면, 살육의 축제 장면 등은 큐브릭적인 염세주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여기에 자신의 따뜻한 감성과 희망적인 메시지를 더했다. 데이빗이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스필버그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과 인간적인 유대감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데이빗이 마침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스필버그식 해피엔딩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결말은 단순히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큐브릭의 원래 구상은 훨씬 더 암울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스필버그는 여기에 희망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그 희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모니카가 데이빗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 이는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 데이빗에게 잔인한 현실이며, 그의 사랑이 여전히 짝사랑의 형태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A.I. 는 큐브릭의 냉철한 이성과 스필버그의 따뜻한 감성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미학을 창조한다.
기술 발전과 윤리적 딜레마
영화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윤리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고, 심지어는 그 감정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들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가?
영화 속 메카들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지만, 결국 인간에게 버림받고 파괴된다. 이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이기심과 결합될 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또한,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여하면서도, 그 사랑이 진정한 것인지 의심한다. 이러한 의심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마저도 의심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인간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A.I.>의 결말은 여전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인류가 멸망한 먼 미래, 새로운 지적 생명체인 슈퍼 메카 또는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존재들이 데이빗을 부활시키고, 그의 기억을 통해 인류의 문명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데이빗의 가장 깊은 소원인 '엄마'를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이 결말은 희망적인가, 아니면 비극적인가? 한편으로는 데이빗의 오랜 갈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결말이다. 그는 마침내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단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하루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며, 데이빗의 사랑은 여전히 조건부적이고 일방적이다. 모니카는 죽은 존재이며, 데이빗의 존재는 새로운 지적 생명체의 실험의 일부일 뿐이다.
이러한 결말은 스필버그 감독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던지는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단 한순간의 완벽한 조화로도 충분한가? 데이빗의 결말은 사랑이 항상 행복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고통과 상실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위해 수천 년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는 인간이 사랑을 갈망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주며, 사랑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A.I.>는 단순한 로봇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 사랑의 복잡성, 그리고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다. 스필버그와 큐브릭의 독특한 협업은 이 영화를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으로 만들었으며,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